안녕하세요. 송파 잠실새내역 한의원, 1988년부터 37년간 한 자리를 지켜온 경덕한의원입니다.
부모님의 뒤를 이어, 온 가족이 함께 진료하는 한의사 박미준입니다.
오늘은 평소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바로 저희가 진료하고 있는 잠실새내 지역의 역사이야기인데요. 혹시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 중, 잠실이 원래 '섬'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1. 500년 전, 잠실은 한강에 떠 있는 섬이었습니다.
지금의 잠실은 롯데월드타워가 우뚝 솟아 있고, 석촌호수 주변으로 카페와 맛집이 즐비한 서울의 핵심 부도심입니다. 하지만 1971년까지만 해도 이곳은 한강 한가운데 떠 있는 외딴 섬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랜드마크 잠실 롯데월드타워
조선 중종 15년(1520년), 한강에 대홍수가 발생하면서 원래 뚝섬(자양동)에 붙어 있던 육지가 떨어져나와 '잠실도(蠶室島)'라는 섬이 되었습니다. '잠실'이라는 이름은 이곳에 누에를 치는 방(蠶室)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것입니다.
조선 세종 때부터 이 지역에는 왕실의 양잠소가 설치되어 뽕나무를 대대적으로 심었고,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도 이 일대가 '상림(桑林, 뽕나무 숲)'으로 표기되어 있을 정도였습니다.
자양동과 신양동 그리고 부리도, 잠실동
2. 물 위에 떠 있는 마을, '부리도(浮里島)'
잠실도 서쪽에는 약 30만 평 규모의 또 다른 작은 섬이 있었습니다. 바로 '부리도(浮里島)'입니다.
부리도라는 이름은 '홍수가 나면 물에 홀로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데서 유래했습니다. '물에 떠내려온 섬'이라 하여 부래도(浮來島)로도 불렸지요. 이 섬에는 부렴마을이라는 50여 가구의 마을이 있었고, 잠실 일대에서 가장 뽕나무가 많았던 곳입니다.
특히 이곳에는 수령 500년이 넘는 뽕나무가 있어, 마을 사람들이 해마다 상신제(桑神祭)를 올렸다고 합니다. 뽕나무 신에게 풍년과 안녕을 비는 제사였지요.
3. 1925년 을축년 대홍수, 그리고 '서울의 낙도'
1925년 을축년 대홍수는 잠실의 지형을 크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원래 잠실 북쪽으로 흐르던 작은 샛강(신천강)이 이 홍수를 계기로 크게 넓어지면서, 잠실은 완전한 하중도(河中島)가 되었습니다.
당시 잠실섬은 북쪽으로 신천강, 남쪽으로 송파강(한강 본류)이 흐르는 형태였습니다. 홍수가 날 때마다 진흙과 모래에 뒤덮여, 1960년대까지만 해도 잠실은 '서울의 낙도(落島)'라 불리며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외진 섬마을이었습니다.
경향신문 1965년 기사에는 "서울 속의 낙도 잠실마을 딱한 사정"이라는 제목으로 교통수단도, 통신설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잠실섬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4. 1971년, 섬에서 육지로 - 잠실 간척의 시작
1971년 2월, 역사적인 공사가 시작됩니다. 잠실섬을 육지와 연결하는 '육속화(陸續化)' 공사였습니다.
공사의 핵심은 이러했습니다.
섬 남쪽으로 흐르던 송파강(한강 본류)을 막아 육지화
섬 북쪽의 신천강(샛강)을 넓혀 새로운 한강 본류로 조성
섬 북동쪽 일부를 잘라내어 강폭 확보
잠실 육속화 공사(1971)잠실섬 남쪽의 물길을 막아 육지와 연결하는 육속화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 서울역사아카이브
1971년 4월 15일, 45일간의 물막이 공사 끝에 잠실섬은 마침내 섬에서 육지가 되었습니다. 경향신문은 이날을 "뭍으로 이어진 서울의 고도(孤島) 잠실"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습니다.
5. 석촌호수, 그 안에 흐르던 한강의 기억
지금 우리가 산책하고 벚꽃놀이를 즐기는 석촌호수. 이곳이 바로 원래 한강 본류(송파강)가 흐르던 자리입니다.
송파강을 완전히 메우지 않고 일부를 남겨두어 호수로 조성한 것이지요. 석촌호수를 걷다 보면, 이 잔잔한 물 위로 한때 배가 오가고 나루터가 있었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으실 겁니다.
조선시대 송파나루는 전국 10대 상설시장 중 하나인 '송파시장'이 있던 번성한 상업 거점이었습니다. 소설 '남한산성'에서 인조 임금이 건넜던 그 나루가 바로 이곳입니다.
잠실섬의 육지화 섬의 북쪽을 잘라서 한강 물길을 넓혔고, 섬의 남쪽은 물막이 공사를 했다. 석촌호수가 물막이 공사의 흔적, 즉 한강이었던 흔적이다.
6. 아시아 공원에 남아있는 '부리도 기념비'
1993년 9월, 옛 부리도 주민들은 자신들의 고향을 기억하기 위해 잠실7동 아시아공원에 '부리도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기념비에는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浮里島는 新川 蠶室地域과 같이 살곶이벌(紫陽洞)에 이어진 半島였으나 中宗 十五年(1520년) 大洪水로 샛江이 나면서 섬이 되었고..."
지금도 옛 부리도 주민들과 후손들은 해마다 음력 10월 초, 이 기념비 앞에서 상신제(桑神祭)를 올리며 500년 뽕나무 마을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부렴마을, 부리도. (출처 : 한강역사이야기마을 다음카페)
[마무리] 강산이 세 번 넘게 바뀌는 동안, 한 자리를 지켜온 이유
뽕밭이었던 섬마을이 대한민국 최고층 빌딩이 서 있는 도심이 되기까지, 잠실새내의 역사는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입니다.
저희 경덕한의원은 1988년, 잠실이 88올림픽과 함께 서울의 새로운 중심으로 성장하던 바로 그 시기에 이곳에 터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강산이 세 번 넘게 바뀌는 37년의 시간 동안 한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뽕나무를 심고 누에를 치던 선조들의 정성처럼, 저희도 한 분 한 분의 건강을 정성껏 돌보는 마음으로 진료해 왔습니다. 앞으로도 잠실새내와 함께 성장하며, 지역 주민 여러분의 건강 동반자가 되겠습니다.
짧지 않은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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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와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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